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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의 발자취/시청에서 남대문까지
최동수  (Homepage) 2011-02-04 22:11:23, 조회 : 5,163, 추천 : 1248

근자에 신문에 반가운 기사들이 실렸다. 명동에 있는 옛 국립극장의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조만간 새로운 명동예술극장으로 개관한다는 것이다.
또 철도역의 기능을 새 KTX 서울역에 넘겨주고 잠자던 구 서울역사가 오는 8월부터 미술축제의
장으로 다시 깨어난다는 소식이다.

오늘은 큰맘 먹고 집을 나왔다.
옛 국립극장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내친김에 화마가 휩쓴 남대문에도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소공동방향으로 나와서 둘러보니 겹겹이 둘러싼 현대식 고층건물 덕분에 시청건물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은 온데간데없다.

아쉬운 마음으로 웨스틴조선호텔을 지나려니 옛 조선호텔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조말 (1899년)에 천지제신에의 제례를 위해 축조한 환구단圜丘壇을 불과 14년 만에 헐고
일본 철도국 주관으로 외국 여행객을 위해서 지어진 서양식 호텔이다.
고전양식을 탈피한 점에서 1910년대로서는 희귀한 근대건축양식이었다.
당시 국수주의적 건축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서구식 벽체에 일본식 지붕을
올리는 양식이었다.
벽돌조의 외벽에 유약을 바른 테라코타를 첩부하였고 지붕은 천연 슬레이트 이음으로 일본 신사에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웨스틴조선호텔 뒤편에 있는 롯데백화점과 호텔자리에는 국립도서관, 산업은행본점과 반도호텔이
있었다.
사료적 가치가 별로 없는 건물은 제쳐놓더라도 반도호텔만큼은 기억해둘만 하다.
1938년에 朝鮮빌딩이란 이름으로 건립된 이 건물은 비록 국수주의 영향 하에 설계 되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한국가옥에 가깝게 하려고 한 흔적이 있었다. 파라펫과 현관부분의 청기와 등에도
나타나 있듯이 조선의 의미를 살리려고 노력한 건축가의 양심을 엿볼 수 있다.  

웨스틴조선호텔을 왼쪽으로 돌면 롯데 영 플라자가 나오는데 이게 바로 구 미도파 이다.
이는 1939년에 지은 정자옥丁字屋 백화점으로, 기하학적인 창열로 근대적 외관을 잘 갖추었던
건물이다.
70년께에 기능주의에 입각하여 전기조명에만 의존하기로 하고 일층 쇼윈도와 라운지의 고정
창을 제외한 전 외벽을 막아버려 근래 유행하는 백화점 외관 디자인의 원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외벽을 털어 내고 전면유리창으로 개조하여 내부가 다 드려다 보인다.
근대건축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헐고 현대적 빌딩을 짓는 편이 바람직하다.

우리시절에 시공관이라고 불렸던 옛 국립극장에 다다르니 가설담장 넘어 높이 설치된 붉은색
철골 지붕틀이 눈에 들어온다.
깜짝 놀라 둘러보니 가설담장에 복원될 극장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는데 지붕을 제외한 외관이
옛 모습과 거의 같기에 안심하였다.
이 극장은 1936년 10월에 명치좌란 이름으로 개관되었다.
지상3층의 아름다운 근대건축의 외관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었다.
군사정권시절에 증권거래소로 용도가 바뀌면서 시민의 품을 떠났다가 새 모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번에는 552석 규모의 지하2층에 지상5층으로 그러나 외관은 이전의 모습 그대로 살려낸다고
한다.
엄청나게 비싼 땅임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되살려 명동의 정취를 보존하고자 하는 당국자에게
갈채를 보낸다.

최근에 신축된 중앙우체국 앞에 왔다.
전면 캐노피에서부터 거꾸로 매단 핫바지처럼 둘로 갈라져 솟아있는 건물 꼭대기를 쳐다보려니
목이 아플 정도이다.
헐려버린 옛 경성우체국은 1915년에 준공된 건물로 벽돌과 석조가 조화를 이룬 사라센식이
가미된 잉글리시 르네상스양식으로 오른쪽 길 건너 한국은행과 대조되는 아름다운 건물 중의
하나였다.
그 뿐 아니라 분수가 있는 광장을 둘러싸고 늘어선 근대적 건물들은 마치 유럽 어느 도시 광장을
방불케 하듯 조화를 이루었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내부가 소실되자 어느 몰상식한 당국자가 현대식으로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온통 타일을 붙여버려 사이비 현대건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우리 시절에 동화백화점이라 하여 김광수와 그 악단의 경음악 연주를 들으러
자주 드나들던 정든 곳이다.
1930년에 준공된 삼월三越백화점이 그 전신으로 완전한 근대주의 양식은 아니고 과도기적인
모습을 남기고 있다.
처마의 코오니스 돌림이나 현관부분의 고풍장식등 절충주의라고나 할까. 얼마 전에 그 뒤편에
고층백화점을 신축하고 신관과 구관 모두 같은 암녹색 화강석으로 마감한 탓에 주변경관이
어두컴컴해졌다.

바로 옆에 화강석으로 지은 건물이 SC제일은행(구 저축은행)이다.
양식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이 건물은 현상응모 당선작답게 육중한 질감을 풍기는 멋이 있어
은행에의 신뢰감을 더해준다.
전에는 어두워 보여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으나 신세계백화점의 짙은 화강석 색상덕분에
상대적으로 환하게 드러나고 있다.

맞은편에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이 있다.
1912년에 준공된 조선은행 건물로서 한국은행이 본점으로 사용하다가 2001년부터
화폐박물관으로 내부용도를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
샤또(Chateau)풍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좌우대칭에서 울어나는 위엄보다 친밀감을 주는 이유는
석재의 정교함을 다한 순수성 덕분인지도 모른다.

본 건물 바로 왼쪽에 독립적으로 서있는 건물이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본 건물과 흡사하게 외양이 바뀌어 부속 건물로 변모하고 말았으나,
이것은 1933년에 준공된 동경화재보험 건물로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집트식 건축을
연상시키던 특이한 건물인데 은행당국에서 알기나하며 고쳤을지?

드디어 남대문으로 나아갔다. 아아- 崇禮門 ! 따로 할 말이 없다.
서울에 남아 있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년)에
완성하였단다.
세종29년(1447년)에 중건하였고 성종 10년(1479년)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61년에 해체수리공사를 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1호로 지정되어 특별 관리를 시작한지 몇 년 만인가?
양녕대군은 국운이 불길처럼 융성하라고 현판도 세워서 썼다는 숭례문. 오늘 와 다시 보니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든 반면에 가설담장에 낙서만 어지러이 남아있다.
다만 1961년께 남대문 중수공사 때 교체되어 불하받은 대들보를 켜서 고 엄상옥 옹께서 제작하신
기타만은 아직도 내게 건재하다는데 위로 받을 뿐이다.

남대문 서쪽 건너에는 상공회의소 건물이 보인다.
한동안 상공장려관도 되었다가 한국무역진흥공사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 앞에 수출 1억불 기념탑을 세웠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 일대에도 근대건축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지금은 유리로 사방이 둘러싸인 12층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옛 건물은 1929년에 준공된 경성상공회의소로 시기적으로는 일본 내의 건축경향보다도 앞서 가던
전위적인 건축이었다.
스틸삿쉬에 의한 넓은 창, 캔틸레버로 돌출한 각층 발코니와 만곡형 지면을 이용한 비대칭의
외관 등 합리주의에서 비롯한 근대주의적 양식의 시조라 말할 수 있겠다.

다리가 아파 그만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뒤쪽 언덕에는 옛 세브란스병원이
(1904년 준공) 있었겠지.
잉글리시 르네상스식 벽돌조로서 양단에 각형 소탑을 두어 이채로웠다.

구 서울역사를 바라본다. 바로 앞에 떠있는 고가도로에 시야가 가려 전경을 보기는 힘드나
1925년 준공된 이래 현재까지 거의 원상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벽돌과 석재의 혼합식 벽면에 벽돌 모양의 타일을 첩부하고
천연슬레이트 지붕에 비잔틴풍의 동판이음한 돔을 올려서 보는바와 같이 아름답다.
근대건축의 걸작인 이 역사(사적 제284호)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새로이 미술축제의 장이
된다니 정말 잘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서양건축은 이조말기에서부터 일제말까지 약 5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고전주의양식에서 벗어나면서 절충주의와 근대건축의 과도기적인 양상을 띠우고 있다.
건축양식은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도 나라마다 전문가가 보기에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유럽 국가들은 각 나라 고유의 양식과 재료의 차이가 있어 수용과정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또한 시대를 흐르는 모든 변천과정을 함께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근대건축양식도 유럽과는 다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몰락하고 있는 서구식 근대건축물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아무리 보존하고 싶은 기념비적 건물이라 할지라도 고층 현대건물 틈새에 끼워져 붙어있다면
보기에 딱할 뿐 존치의의를 살리기는 힘들다.
진작부터 주위에 여유 공간을 확보하여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면 차라리
헐어버리는 게 낳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서울시청 본관은 그런대로 오래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야 되겠으나, 어쩌다
을지로 입구 네거리 모퉁이까지 삐져나온 한국전력서울사무소의 근대식 5층 건물은
그 존치시기를 놓친 듯하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다보면 왠지 기분이 씁쓸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작품가치 있는 근대양식의 건물이 줄잡아 150여 채나 있었다는데…


2008년 4월 2일.  


Jason Kim
기타면 기타..건축이면 건축...
도대체 선생님께서 모르시는것은 무엇인가요?
오늘도 좋은 지식을 공짜로 얻어갑니다.^^
150채나 되던 걸작인 건물들이 한국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에만도
어느 정도 뿌듯한 이유는 뭘까요...
저자신의 건축양식에 관한 무지와 무관심의 소산이겠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ㅋㅋ
아마 평범한 시민(국민)들은 몰라서 작품가치있는 근대양식 건물을 당국이나
투자가가 허물면.."허무나 보다"하고, 현대건물을 그자리에 지으면 .."깨끗하게 새건물 짓나보다.."
하고....차라리 속이나 편하죠...ㅋㅋ
선생님께선 이리저리 ...씁쓸하겠슴다...ㅋㅋ
2011-02-05
0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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