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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만드는 남자
최동수  (Homepage) 2011-01-16 10:20:34, 조회 : 6,499, 추천 : 1181

이 글은 제 아내가 펴낸 수필집 [꽃은 흔들리며 사랑한다]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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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만드는 남자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워 오는데도 남편이 올라오지 않았다.
혹시 과로하여 쓰러지지나 않았는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지하실의
목운 공방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자 찬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이는 기타를 만들다가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기타 줄을 고르고 현을 퉁겼을 때 악기와 연주자 사이에 완전한 공명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그야말로 환희의 절정이라고 그이는 말했다.
기타를 만들다가 음을 통해서 신과의 만남을 경험한 것이다.

  연애하던 시절 덕수궁 후원을 거닐다가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백할 것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와 데이트를 하느라고 자기 애인을 돌보지 않았더니 그녀가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애인을 나에게 소개하겠다고 했다.
나는 독신주의를 선언하고 친구로 자유롭게 지내다가 그의 끈질긴 청혼에 결혼을
생각해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고백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난감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모든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태연한 척하며 그 애인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이는 들고 있던 기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기타케이스가 없어서 그의 어머니가 자색 우단으로 기타의 모양대로 옷을 지어
입힌 것이라며 지퍼를 열고 조심스럽게 기타를 꺼냈다.
기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여주면서 그것이 자기 애인이라고 소개했다.
그 애인이 사람이 아닌 것에 일순 긴장이 풀리는 듯했지만 외려 더 당황했다.
나와의 데이트 자금을 마련하려고 애인을 전당포에 잡혀 두었더니 습기로 피부가
트고 몸도 틀어져 상했다며 속죄하듯 기타를 쓰다듬었다.
귀여운 소녀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질투의 불길이 모세혈관까지
팽창시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수한 풋내기 예술가를 발견한 반가움에 가슴이 뛰었다.
그 돈으로 나에게 복사판이었지만 르느와르의 그림을 사주었고, 음악회에
데리고 가 황홀경에 젖어들게 해준 것을 생각하니 나도 기타에게 죄를 진 것
같았다.
그날의 감동으로 나는 기타를 만드는 남자의 아내가 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이가 기타에 매료된 것은 가가와 도요히꼬의 ‘사선을 넘어서’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전쟁에서 다리 불구가 되어 돌아온 주인공이 창녀가 된 아내의 집 근처 전봇대
아래에서 기타연주를 하는 장면이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즈음에 ‘G선상의 아리아‘를 기타연주로 들었는데 그때 기타의 선율을 타고
날아온 화살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그이가 고등학생이던 1950년대에는기타가 흔하지 않았다.
아버지께 졸라 기타를 하나 샀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란다.
더 나은 것을 사려면 큰돈이 필요했고 또다시 사 달라고 할 염치도 없어서 직접
기타를 만들어보리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마땅한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라 뒤꼍에 걸려있는 체를 집어다가 망을
뜯고 원통으로 만도린 모양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오동나무장 서랍을 뜯어서
기타를 만들어 본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건축설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도 직장에 나갈 때였다.
기타제작을 할 수 있는 공방을 따로 둘 수 없던 집에서, 그는 밤마다 안방에
석유난로를 피워놓고 아교를 끓이면서 기타를 만들었다.
석유냄새가 진동하는 방 한구석에서 잠든 나를 수시로 깨워 기타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설명하곤 했다.
  어느 날은 기타의 전면에 색을 입히다가 색감을 보아달라고 깨우기에 곤한
잠결에 눈을 부비며, 색이 좀 창백해 보인다고 했다.
다시 잠들 무렵에 또 깨웠다.
그런데 기타 얼굴이 술에 취한 것처럼 붉게 칠해져 있었다.
낭패한 표정으로 색이 짙어진 기타를 들어 보이며, 화장이 좀 진해졌냐고 묻는
그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사무실에도 나가지 않고 그렇게 밤낮으로 기타 만들기에 몰두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이들 교육을 다 시킨 뒤에 다시 기타제작을 하면 그때에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난 봄, 미국여행길에 리차드 부르네의 시카고 공방을 찾아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그가 기타를 만들고 싶어 하자, 그의 어머니는 쓰고 있던 식탁을 재료로 쓰라고
아낌없이 내 주었다고 했다.
그 어머니가 가끔씩 지하의 허술한 공방을 들여다보며 잘 되어 가느냐고 물었고,
그럴 때면 기타를 만들려고 자른 식탁 조각에서 기타의 울림이 들리는 듯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시어머님을 떠올렸다.  

  1992년에 우리 부부는 마드리드에 있는 유명한 기타 제작자인 파울리노
베르나베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아내와 선천성 장애자인 아들과 함께 대문까지 나와서 낯선 우리부부를
맞아 주었을 뿐더러, 자신의 내밀한 공방과 소장품들을 보여주고, 아끼던 기타까지
선뜻 내주었다.
그 일은 지금도 감격으로 남아있다.
특히 장애자인 아들을 돌보면서 남편의 기타제작에 헌신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크게
감동했다.
그 때 받은 베르나베의 명기에는 그의 아내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1971년에 기타계의 아방가르드 선두주자인 지그프리트 베렌트가 가수인 아내
크라우디아와 함께 내한 공연을 했는데, 그때 남편은 독일어 통역을 도우며 그들과 여러 날
함께 지냈다.
그 일로 가까워진 덕분에 베렌트가 갖고 있던 기타 바이스거버의 본을 떠서 남편은 마침내
자신의 첫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 부부의 경우에도 아내의 내조가 인상적이었다.
화음으로 내조하던 아내는 심장병이 깊어진 베렌트를 보살피며 그의 음악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 여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느꼈던 기억들은 내가 남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기타제작을 위한 재료를 구입하고 보관하는 일은 우리 집안사 일순위이다.
이사를 할 때는 기타 재료만을 조심스럽게 운반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해야만
했다. 우리는 해외 여행할 때마다 기타의 정보와 재료를 수집하기 위해, 가보고
싶은 곳을 접고 악기 박물관이나 자료 상점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렇게 수집한 재료가 삼십여  년이나 묵어 이제는 특상품 재료가 되었다.
  
  건설 경기가 무르익던 시절, 오십대 중반인 그이가 기타 제작에 전념하려고
사표를 제출하고 회장에게 인사하러 갔더니, 어디가 아프냐며 손가락을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더란다.
그러그러 세월의 강물은 흘러 모두들 은퇴했고, 그 회장의 칠순잔치에서 그이는
자신이 만든 기타로 축하 연주를 했다.
연주하는 그를 바라보며 회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내가 외출에서 늦게 돌아와 보면 점심과 저녁도 거른 채 제작에 몰두해 있다가,
시장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내가 없는 동안에 이루어진 공정을 보여 주고 설명하기에 바쁘다.
기타 하나를 만들고 나면 체중이 3킬로그램이나 빠지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혼신을 다해 낳은 기타를 그는 아낌없이 연주자에게 희사한다.
곁에서 아까워하는 표정이라도 지으면 나를 속물 취급한다.
제작자는 만드는 보람이 소유하는 기쁨보다 더 크다며 자기가 낳은 딸에게 좋은
사위를 맺어 주는 일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작에 몰두하면 그는 일이나 말이나 남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별나게
행동하곤 한다.
식탁에 앉아서도 음식은 본능적으로 입에 떠 넣으며 기타 제작 공정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나의 어떠한 물음에도 언제나 기타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한다.
한번은 교회 예배 시간에 메모를 하기에 설교 말씀을 적는 줄 알았다.
그러나 메모지엔 기타 모형이나 새로운 제작 디자인이 그려져 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하는 첫 인사가 기타 이야기다.
자면서 이런 구상을 했다는 등 오늘은 이 부분을 고쳐 보겠다는 등, 정말 못
말리는 열정이다.
손님이 와도 기타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삶의 폭이 넓은 사람들이야 그런대로 이해를 하겠지만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소개할 때 좀 별난 사람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 뉴턴이 끓는 물속에 달걀대신 시계를 넣었다는 일화를 떠올리며
기타를 만드는 남자의 예술적 끼와 혼에 무언의 격려를 보내곤 한다.

  그이가 만드는 기타는 요염하기도 하고 우아한 여인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겨자씨를 보고 새가 깃들여 노래하는 무성한 나무를 떠올리는 상상력과, 새의
노래를 들어보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나무를 다듬고 다듬어 드디어 명기를
탄생시켰다.
그는 기타의 선율을 통해 신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08년 1월,  남편의 칠순을 축하하며




이상훈
기타애 대한 열정과 사모님의 깊은 마음을 느낍니다
언제나 두분 건강하시고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1-12-08
14: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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