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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전시회에 나타난 친구들
최동수  (Homepage) 2011-01-14 21:52:22, 조회 : 5,844, 추천 : 1194


아침에 전시용악기 2대, 스탠드와 발판을 차에서 내리는데 비바람 때문에 우산까지 받고 쩔쩔 맸다.
악기 전시는 비가 오면 난감하다.
습기에 민감한 까닭이다.
다행히 전시가 시작될 쯤에는 청명한 초가을 날씨로 돌아왔다.
변덕스럽지만 고마운 날씨, 누굴 만나도 반가울 상쾌한 날씨로 바뀌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가운 얼굴들이 몰려들었다.
얼핏 헤아려보니 이십 명은 되지 싶다.
기타전시회에 웬 노인네들이? 주위의 젊은 관람객들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고등학교와 대학동창들이 대거 몰려온 까닭이다.
찾아준 친구들이 반가움을 넘어 고마웠다.
이제야 친구들이 나의 엉뚱한 짓을 이해하겠구나 싶어 감격스러웠다.
그동안 악기전시회에 가끔 출품하곤 했으나 기타제작이란 우리 또래에게는 관심사가 될만한게
못되기에 알리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더 늦기 전에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이번에는 초청을 한 것이다.

50여 년전 대학시절에 운명 같은 첫사랑이 찾아왔다.
가가와 도요히꼬의 「사선을 넘어서」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전쟁으로 외다리가 되어 돌아온 일본장교가 미군에게 몸을 파는 아내의 주위를 맴돌며 전봇대에
기대어 기타 연주로 걸식을 하는 장면에서 묘사된「G선상의 아리아」의 매력에 젖어 들었다.
그러던 중 영화관의 로비에서 흘러나오는 바로 그「G선상의 아리아」의 기타 선율에 심취한 것이
나의 삶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70년 초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던 어느 날, 별로 일이 없는 겨울철에 사무실에도 나가지 않고
제작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말릴 생각은 없지만 생활의 기반이 잡힌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기타제작을 접은 이래 18년간의 해외생활 내내 기타 제작에 대한 꿈은 더욱더 구체화되었다.
해외 근무라는 기회를 활용해 외국의 공방과 자재상을 찾아다니며 제작에 필요한 자료와 공구를
수집하였다.
평생 동안 제작할 재료도 사들였는데 40여년이 넘는 재료도 있으니 가격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드디어 90년 초에 이제는 제작에만 전념해도 좋다는 아내의 허락이 떨어졌다.
어려웠던 시절에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당시 나는 50대 중반에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는 유학(?)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독학을 하며 국내외 공방을 들락거렸지만 제작수업을 제대로 받고 싶어서였다.
은퇴한 첫해에는 미국 힐즈버그에 있는 아메리칸 기타스쿨을 수료했다.
이듬해에는 스페인 꼬르도바의 기타페스티벌에서 마에스트로 호세 로마니로스에게 제작
마스터클래스를 사사받았다.
위의 두 과정 모두 한국인으로는 처음이다.
현재 미국 현악기 제작가 협회〔GAL〕의 한국인 유일의 회원이기도 하다.

작년(2008년)에는 ‘기타매니아’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명기에의 길라잡이」라는 제목으로 40일에
걸친 담론을 실었다.
금년가을에는 그 완결 편을 올릴 예정이다.
‘다음카페’의 기타사랑방에서는 「기타이야기」라는 게시판지기를 하고 있다.
금년(2009년)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열린「대전국제기타페스티벌」에 또 다른 악기 2대를 출품했다.
이 행사는 제법 규모가 커져서 8개국에서 참여한 제작가 33명의 수제악기전시회, 기타리스트 45명의
연주회와 콩쿠르대회가 진행된다.
이 페스티벌에서 내가 출품한 기타 2대를 일본의 박물관 운영자가 인수해 가는 경사가 있었다.

나에게 기타를 만드는 일은 자식을 잉태하여 낳는 일과 같다.
수개월 만에 기타가 완성되면 이어서 사계절을 거치며 변형을 관찰하고 손질을 한 다음에 칠을 하여
마무리를 짓는다.
완성된 기타는 내 딸을 가장 잘 보살필 수 있는 연주자 즉 사윗감을 찾아 시집을 보낸다.
가격으로 치자면 낮게 잡아도 수백만 원이야 되겠지만 재료비 정도에 내어 준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또한 나이 들수록 꿈은 멀어져 가게 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에 첫사랑으로 다가 온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 또 하나의 명기를 낳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묵은 장맛 같은 친구들이 찾아주어 이번 전시회는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일산까지 찾아준 동문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09년 10월 28일 동창회보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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